UPDATED. 2017.12.19 화 01:40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귀농소설 5장 ] 산딸기에 인생을 걸다

조용한 마을에 광풍으로 휘몰아쳤던 레미콘회사와 마을주민들과의 파문은 상처는 났지만 더 이상의 생채기를 내지 않고 마무리를 지었다.

나에게 절실한 것은 농사를 잘 지어서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부족한 농업기술을 배워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농사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무렵 약간의 건강과 체력을 회복한 아내가 작으나마 힘이 되기 시작했다.

2년 동안의 농사는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덧 2,000평의 밭에 산딸기가 제법 자리를 잡아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부족한 돈은 아침 일찍 강에 나가 고기를 잡아 생활비를 충당하였고 붕어즙은 부산과 인근 도시로 소문이 나 한 달 생활비를 대충 충당 할 만큼 소득이 되었다.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은 우리 부부는 산딸기농사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단 것을 알고 주변 농업인에게 배우려고 했지만 배움의 내용이 너무 부실하고
실제 산딸기재배방법에 대한 기본지식이 산딸기를 심고 퇴비주고 수확하는 일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그리다 산딸기재배에 대한 무지함에 결정적인 사건이 그해 여름에 발생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특정한 종류는 산딸기가 암수 구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산딸기재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 장모님도 몰랐던 사실로 인해 나는 그해 큰 손해를 입었다.

장모님 밭에는 흑딸기라는 아주 맛있고 알이 큰 산딸기가 있었는데 이게 돈이 되니 옮겨 심어서 키워보자 하였고, 실제 흑딸기는 다른 것 보다 비싸고 귀하게 대접받는 산딸기였다.

장모님이 자기 밭을 포기하고 농사꾼이 되겠다는 사위를 위해서 내놓은 귀한 나무이기에  2002년 여름부터 그해 겨울까지 아침 물 한 사발에 새벽을 깨우고 밭에 나가 달빛에 어둠이 내릴 때 까지 열심히 산딸기나무를 심었다. 

초봄이 되니 파란 잎이 쑥쑥 튀어나오며 튼실하게 자란 산딸기는 다른 나무보다 긴 꽃대를 내밀며 하얀 꽃을 만개시켰다. 진한 꽃향에 매료된 벌과 나비들이 분주하게 오가더니 꽃이 지고 열매가 툭툭 모양을 잡고 커야 될 5월 중순  
이때쯤 대부분의 산딸기열매는 파란주머니 모양을 잡고 익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옮겨 심은 나무에 달린 열매는 간혹 한 두게 정도 외에는 대부분 삐뚤어지거나 열매가 없는 빈 꼭지로 일명 싸라기딸기가 되어 열매가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나!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올해만큼은 나무가 잘 크고 튼실해서 남들처럼 목돈을 만지고 농협에 낸 빚도 청산할 수 있겠다고 큰 기대를 가졌었는데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른 채 날아가 버렸다.

아내와 나는 설마설마 하던 것이 결국 열매가 없는 빈 꼭지 산딸기로 판명되자 허탈함으로 순간 허물어져 버렸다. 장모님 밭에서는 알도 크고 열매도 다른 나무보다 많이 열리는 이웃 농부들이 탐내는 종자이다.

한참을 넋을 놓고 지켜보던 장모님은 괜한 짓을 해서 농사를 망쳤다며 미안해서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망친 농사 때문에 화가 나서 괜한 장모님을 원망하고 싶었지만 사실 장모님은 자기 밭을 포기하고 주신 모종 아닌가!

잘못이 있다면 우리 밭에 있는 것이지 장모님한테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원인을 알아야 진단을 내리고 묘목을 파내던지 땅을 바꾸던지 할 것인데 도저히 원인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마침 이웃동내 산비탈에서 같은 모종으로 산딸기농사를 짓고 있던 선배가 민물장어를 사러 왔다.

그리고는 내가 올해 농사는 망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산딸기 밭을 한번 보자고 했고 바로 옆 산딸기 밭을 보여 주었다.

1000평의 농장에 열매도 없는 산딸기나무를 본 선배가 깜짝 놀라며 “어라 암놈만 심었네!”

“어이구 동생아 이놈은 암수가 있어서 수정모종을 꼭 중간 중간 심어야 열매가 맺힌다.”

“네? 암수가 있다고요! 은행나무는 암수 따로 인 것은 알지만 설마 산딸기나무에도 암수가 있습니까?”

선배의 말 한마디에 경기를 할 수준으로 놀라고 말았다. 아! 우리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구나.

열매가 맛있고 알이 좋은 대신에 수정이 까다로운 나무로 주변에 조금씩 심겨져 있었는데 원리를 아는 분이 거의 없었다. 선배도 우연히 알고 다른 모종과 혼합되어 있을 때 열매가 크고 결실이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이었다.

중간 중간에 다른 모종을 번갈아 심어야 되는데 장모님의 밭은 우연히도 여러 가지 모종이 혼식되어 좋은 결실이 가능했던 것 이었다. 우리 밭에는 장모님이 좋은 모종만 준다고 선별하여 이식했는데 그것이 화를 부른 것이었다. 선배님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날 방문한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자연의 섭리도 모른 채 애꿎은 밭을 탓하고 나중에는 답도 모른 채 모종을 다 파내었을 것이다. 나는 장모님께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였다.

“올해는 그래도 듬성듬성하지만 1,000평이라는 농사가 남아 있으니까 농비는 나올 것 같아요.”

“실패한 것 보다 큰 것을 배웠으니까 올해 흑딸기를 좀 더 늘리고 중간 중간에 수정모종을 심는다면 내년에 큰돈이 될 거에요.”

“아직 우리 밭보다 큰 흑딸기 밭은 없으니까 고생 한번 더하면 됩니다. 장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쉽고 허탈한 순간이었지만 대가를 치룬 만큼 배웠다는 것으로 큰 위안을 삼았고 이날의 교훈으로 농사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였다.

그해 6월은 겨우 농비만 건졌다. 새벽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강으로 나갔고 좀 더 돈이 필요해져서 저녁에도 고기를 잡기 시작했는데 장모님이 그 소식을 듣고 혼자 밤에 강고기 잡기 힘들다며 한참을 동행해 주셨다.

그나마 물고기가 풍년이라 고생한 만큼의 소득이 생겨서 큰 빚을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농사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농사를 계속 짓는 다는 것은 또 언제 더 큰 문제에 봉착될지 모르는 일로 불안하였고 농업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며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영농교육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기술센터에 등록하면 교육이 있을 때 연락을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농업인 단체에 등록하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하여 농촌지도자협회에 선배를 찾아가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7월 중순에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기술센터에서 영농교육이 있다는 전화가 왔다. 처음으로 영농교육을 받기위해 기술센터 교육장을 찾은 첫날 나에게는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한 대단한 날이었다.

영농인에게는 국가와 시에서 주는 다양한 지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조건만 된다면 신청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배 농업인들의 영농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영농교육을 받으러 온 농업인들은 그만큼 수준이 높았고 농업이 처음이라는 젊은 후배 농업인에게 관심과 함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날 배운 것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말해주었는데 뜻밖에도 다음에는 같이 가서 배우자고 하였다.

아내도 시골출신이긴 하지만 농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면서 이번 참에 이왕 귀농하였으니 같이 배우자고 한 것이다.

맞다 둘 다 잘 모르니까 같이 배우면 부족한 부분을 빨리 채울 수 있을 거야. 
그리고는 그 후의 영농교육은 부부가 함께 교육을 받으러 다녔는데 뜻밖의 효과를 얻었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영농교육을 받는 것을 바라보든 기관에서 다양한 지원을 해 주었고 선배농업인에게도 금방 소문이나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는 영농교육장에 여자 영농인을 보기가 참 힘들었다. 젊은 부부가 함께 배우고 있었으니 예쁘게 보인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영농에 대한 퇴비사용법과 토양관리방법 등 다양한 지식을 얻으며 농업에 대한 기초를 조금씩 쌓았다, 하지만 계속 목마른 것은 산딸기영농에 대한 교본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재도 없었고 강의하는 분도 없었다. 누구도 가르쳐 주는 분이 없었고 산딸기에 대한 관심이 없는 때였다.

산딸기란 모내기가 끝나면 틈새 농작물로 약간씩 심어 용돈벌이나 과일주를 담기위한 작물로 알고 있었던 때였다. 함께 교육받는 선배님들도 조언을 하였는데 차라리 하우스작물로 채소를 심는 것이 어떻겠냐며 모래밭에는 채소가 정말 잘되니 산딸기농사는 버리고 채소를 심어라고 조언해 주셨다.

맞는 말이었다. 시설하우스를 잘만하면 수입이 괜찮았다. 특히 우리 밭은 모래밭이고 강도 옆에 있어 옥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우스농사에 큰 매력이 없었다. 오히려 배우면 배울수록 산딸기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그러다 전국에서 산딸기가 재배 되는 곳은 이곳 경남 일부 지역뿐이라는 선배님들의 말을 듣고 나는 큰 결심을 하였다.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내가 산딸기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리고 그때부터 영농기록장을 만들었다.

퇴비는 언제 주고, 나무는 어떻게 심는 것이 좋은지 꽃이 피는 시기와 온도, 꽃이 피고 며칠 만에 열매가 익는지 어떤 토양에서 잘 자라는지 가지치기는 어떻게 하는지 모종은 어떻게 자라는지, 병해충은 어떤 것이 있는지 모종의 종류는 어떤 것인지 등등 시시콜콜 한 것들을 무조건 적어서 기록하였다. 

이왕 시작하였으니 산딸기나무와 대화를 하겠다는 심정으로 해보자. 산딸기재배에 인생을 걸자고 마음먹었고 나중에는 5년을 그렇게 하고나서 산딸기재배에 대한 기본 영농지식을 만들 수 있었다.

귀농한 우리부부에게 만만하게 보였던 농사일이 배우지 않으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던 실패의 연속에 농업이 만만찮게 다가오면서 그 당시 대부분의 영농인에게 하찮은 작물인 산딸기를 바라보던 시선 속에 나도 하찮은 농업인이란 동질감으로 오기가 발동하여 산딸기를 통하여 목표의식을 세우고 산딸기에 모든 것을 거는 계기가 시작되었다. 

 

[한편의 시]

겨울날의 촌부
차가운 어둠이 마누라의 달그락 소리에 놀라  달아나면
바가지 물에 비친 햇살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어제같이 지친 몸뚱아리가
한 바가지의 아침햇살에 그렇게 깨어나
몇 십 년의 거친 숨소리를 땅에다 뱉어낸다.
 
이 겨울에는 조금 쉬어가도 되는 대
내 땅은 차가운 손을 부비 듯 내 품을 원한다.
구들에 불 먹이듯 
한 수레의 햇볕을 안겨주고 나면
언제나 내 땅은 말없이 차가운 땅거미를 몰아온다.
일상은 한겨울 전부를 이렇게 살며
담배 한모금도 마누라의 잔소리로 쫓겨난다.
 
겨울의 내 땅은
그래도 나에게는  아침에 일어나 숨 쉬게 하는 어머니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최석용  liz4435@hanmail.net

<저작권자 © 농업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