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탈퇴와 혹독한 긴축안 놓고 5일 그리스 '국민투표' 주목

그리스가 30일 디폴트를 선언했다. 채무 불이행이다.

그리스가 첫 경제위기를 겪은 2010년과 비교하면 세계 경제 여건이나 재정 건전성이 강화되었지만 그래도 세계 각국은 그리스와 EU의 협상이 결렬되고 그리스가 국가 부도로 이어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디폴트를 선언한 그리스 총리 '치프라스'가 당장 도마에 올랐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그다. 급진 좌파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그리스 정부는 거짓말을 했고, 협상 파트너들을 배신했으며, 유럽의 규범을 왜곡했다”고 맹비난 했다. 융커의 언급처럼 치프라스와 그가 이끄는 그리스는 세계의 문제아가 된 것일까?

▲29일런던에서한여성이'그리스를지원하자'는푯말을들고시위를하고있다.(사진=연합)
▲29일런던에서한여성이'그리스를지원하자'는푯말을들고시위를하고있다.(사진=연합)

그렇지만 29일 런던에서는 ‘Support for Greece(그리스를 지원해주자)’라는 푯말을 든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21세기 자본>

으로 유명해진 피케티를 비롯한 많은 석학들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마저 그리스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그리스는 문제아일까? 아니면 세계 경제 부실의 희생양일까?

그리스의 현 상황

그리스는 뱅크런 다시말해 예금인출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은행과 금융기관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에게 자금을 대주는 곳은 유럽중앙은행(ECB)으로 단기자금 성격의 긴급 유동성 지원을 그리스 국민투표일인 5일까지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소한 인도적인 지원은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리스는 지금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 국민들의 생활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지난 달까지 연금의 절반을 받아 생활해 온 한 노인은 “이번 달에 60유로(약 7만 5천원)밖에 받지 못했다“며 ”이것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고 참담해 했다.

금융업과 은행업무가 정지됨에 따라 다른 산업들도 업무 마비 사태가 벌어졌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늘면서 이 중 일부는 쓰레기를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실직한 한 아테네 거주자는 “하루 8시간씩 쓰레기통을 뒤져 5~10유로(약 6천원~1만2천원)를 번다”며 “상태가 좋은 음식이 쓰레기통에 있으면 주워 먹는다”고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스 시민들의 입장

한 은행원은 “국민투표 결과 그리스의 '그렉시트'(EU 탈퇴)가 결정되면 그리스를 떠나겠다”며 “유로화 체제를 벗어나 드라크마화 시대로 돌아가면 그리스인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아테네의 변호사는 “EU 구제금융안에 서명하는 것은 독일의 식민지가 되겠다는 뜻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변호사와 금융인, 회계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중장년층 그리스인들은 구제금융안에 찬성 집회를 여는 반면, 예술가와 자영업자, 젊은이들은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분석했다.

또한 5일 치러지는 국민투표의 의미는 "EU 탈퇴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니라, 채권단이 제시할 추가 긴축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라며 "여력이 있는 부유층과 이를 견딜 수 없는 젊은 층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민투표는 세대와 계급 간 갈등을 뚜렷하게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이런 상황에 처한 이유

그리스는 2011년 경제 위기 후 국내총샌산(GDP)의 1.8배인 3천100억 유로의 빚을 지고도 뼈를 깎는 개혁을 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공무원들은 계속 변함없는 복지를 누렸으며, 지각이 많아 제시간에 출근만 하면 ‘정시 수당’도 받을 정도였다. 85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에게 주는 월급이 GDP의 50%를 넘어섰다.

58세가 되면 퇴직을 하여 현역 때 월급의 98%를 연금으로 받았다. 이 연금제도는 채권단의 요구로 인해 삭감됐지만 그마저도 채권단의 요구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청년 실업률은 50%까지 올랐다.

'방만한 복지'가 그리스 부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그렉시트'를 바라보는 시각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조셉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리스가 EU를 탈퇴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이뤄진 트로이카가 내놓은 그리스 위기 처방법이 틀렸다는 것이 그 이유다.

“5년 전 트로이카가 강요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그리스의 국내 총생산(GDP)이 25% 감소하는 등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젊은 층의 실업률도 60%를 넘어섰다”고 스티글리츠는 지난달 29일 영국의 한 일간지에 기고했다.

“채권단의 긴축안은 심장마비를 겪은 비만 환자에게 단식 요법을 주문하는 것과 같다”고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경제칼럼니스트도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채무 탕감을 받아 성장을 이룩한 독일과 프랑스가 부채에 허덕이는 그리스에 긴축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도 말했다.

반면에 유럽연합(EU)에 남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학자들은 대개 보수학자들이다.

“그렉시트는 트로이카가 요구한 개혁안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경험한 아르헨티나의 도밍고 카바요 전 경제장관은 한 일간지에 기고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그리스계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 교수는 독일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등 채권단의 요구가 가혹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EU의 지원 없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운 만큼 협상장에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로이카의 구제금융은 어디에 쓰였을까?

그리스는 2010년 이후 2천520억 유로를 트로이카에서 지원 받았다. 이 많은 돈으로 그리스는 무엇을 했기에 2015년 현재 그리스의 부채는 2010년보다 더 늘어난 것일까?

구제금융의 92%가량이 부채탕감과 관련해 국내외 은행들에게 지급되었다고 전한다. 1천492억 유로가 부채 원금과 이자변상 자금으로 쓰였고, 482억 유로가 그리스 은행들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 345억 유로가 민간 채권자들에게 ‘1천억 유로’ 부채 탕감 대가로 쓰였다.

반면에 그리스가 온전히 경제살리기를 위해 쓴 돈은 8%인 201억 유로 밖에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지원금의 대부분이 채권자 주머니로 들어간 것이다. 말 그대로 빚잔치다.

그 많은 돈을 받고도 8%밖에 사용하지 못했으니,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지 못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빚만 늘고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추가 협상은 더욱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할 분위기라 그리스의 많은 사람들은 채권단을 '악마'라고 부르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그리스 국민에게 불편과 배고픔을 강요하는 독일. EU의 입장은

중국은 "그리스가 EU에 남는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EU의 장기 국채를 사들이면서 당분간 자금을 빼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리스 부도 때문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EU의 경제악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중국은 세계 경제를 위해 EU가 건실하게 유지되는 것을 바란다. EU에서 그리스가 탈퇴하면, 경제가 안좋거나 EU에 불만이 있는 나라들도 줄줄이 탈퇴할 것이고, EU가 약해지면 세계 경제의 한 축이 무너져서 세계 경제가 악화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와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중국도 경제악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란 상황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녹색경제를 표방하며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는 자부심 강한 독일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혹독한 긴축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EU체제의 유지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EU는 문화적으로도 깊이가 있어 세계적으로 가치가 있지만, 유럽이 무너지면 유럽의 르네상스와 인본주의는 세계 역사를 이끌어 가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유럽이 세계의 트렌드가 되기를 멈추면, 중국의 공산당이 세계의 트렌드가 되거나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세계의 트렌드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더욱 예측불허의 세계가 될 것이란 이야기다.

EU가 무너지면 문화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올테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빨리 나쁜 영향이 올 것이다. EU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도 악화되어 세계적인 장기 불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

EU를 지키는 일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리스 국민들의 운명

그리스 국민들은 세계 경제와 문화, 더 나아가 세계 정치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해 긴축을 강요당하고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렉시트를 맞이하든 아니면 잔류하든, 그리스의 앞날은 당분간 "고난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의 그렉시트 여부를 바라보는 전세계인들의 불안한 눈길이 5일 치러지는 그리스 국민투표로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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