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농부 유지혜 CEO

최근 농업분야에서 청년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냥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활동에 주목하게 된다. 청년농부라는 이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종횡무진하면서 우리 농업을 알리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청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청년농업인의 약진이 돋보인다. 청년,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CEO라는 명함을 갖고 농사를 짓는 바람난 농부 유지혜 씨를 만났다.

청년, 그리고 농업CEO에 주목하다

올해 서른셋의 유지혜 씨는 CEO다. 자신의 사업체를 가지고 경영하기 때문이다. Chief executive officer의 약자인 CEO는 흔히 기업의 최고 경영자로 해석된다. 최고경영자인 CEO는 기업에서 이사회의 주재, 기업 방침의 결정, 장기계획 작성 등과 관련해 총괄적인 책임을 가진다. 자신의 농지를 갖고 농사를 짓는 농부는 CEO다. 자신의 농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 즉 생산방법에서부터 수확, 판매, 유통까지 농업경영 전반을 결정하기 때문에 CEO다.

‘바람난 농부’를 운영하는 CEO 유지혜는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특별히 귀농이라 할 것도 없었다. 유지혜 대표는 “김제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인근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김제에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굳이 귀농, 귀촌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귀농보다는 창업에 가깝다고 말했다. 중국어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을 살리기 어려웠다.

김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부모님의 농사를 도와주다가 결국 고심 끝에 벼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농업법인 ‘바람난 농부’를 창업하면서 어엿한 CEO가 됐다.

6년차 농부인 유 대표는 여름에는 쌀농사를 짓고 가을에는 밀과 보리를 심는다. 쌀농사로만으로는 소득이 많지 않아 2모작을 해야 한다. 그는 “올해 농사 6년차인데 겨울철 작물을 재배해야 그나마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며 “김제는 평야지대라 채소 등의 시설원예보다는 쌀과 밀, 보리 등 곡물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지난해부터 빵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법인 이름인 바람난 농부는 유 대표의 빵 브랜드이기도 하다. 겨울철 밀을 재배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우리밀 빵을 만들기 위해서다. 유 대표의 쌀과 밀 농사는 6차산업으로 진행 중이다.

유 대표는 “농사는 매년 기후와 생산량에 따라 소득이 달라진다. 특히 벼농사는 11월에 수확해 농협 등에 판매해야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계획적인 영농이 어렵다”며 “큰 수익은 아니어도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소득원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가 제빵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 청년답게 유 대표가 만드는 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판매된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체계가 아니고 직접 만들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지인과 SNS를 통해 소량의 빵을 팔고 있다.

농민들 대다수는 농사 짓기도 바빠 가공과 판매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며 6차산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유 대표 역시 “농사짓고, 빵 만들고, 포장하고 택배발송하고 블로그 관리까지 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며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이 6차산업”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쌀을 주로 생산하는 농가이기에 쌀빵도 같이 만든다. 우리밀과 우리쌀로 만든 빵은 의외로 인기가 많다. 유 대표는 쌀빵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인 검토를 끝에 제빵용에 적합한 쌀 품종인 삼광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유 대표는 밀 품종도 면용으로 사용되는 백중밀 위주로 재배하고 있다.

실제 삼광벼는 농촌진흥청의 쌀빵·케이크 등을 만들기 좋은 벼 품종 연구에서 단맛이 높고 부드러워 식감을 갖고 있어 제빵용으로 좋은 품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 대표는 자신이 생산한 쌀과 밀을 가공해 빵을 만들면서 자신의 생산영역 확대뿐만 아니라 가공과 판매, 그리고 빵만들기 체험까지 합쳐 6차산업으로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날씨에 울고 웃는 천상 농사꾼

지난 가을 추수가 끝나고 비가 자주 내려 보리와 밀 파종이 늦었다고 한다. 유 대표는 “예전 같으면 11월 초에는 밀과 보리 파종이 다 끝나야하는데 지난해는 상당히 늦었다”며 걱정을 늘어놓는 유 대표의 모습은 천생 농사꾼이다. 한술 더 떠 농사는 역시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지난해처럼 날씨가 안 좋았던 해도 없다고 속상해 한다.

지난해 봄부터 가뭄이 심했고 가을철에는 고온에 태풍까지 왔다. 여기에 수확기인 10월부터 비가 자주 내려 벼 수확에 어려움을 겪은 농가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수발아 현상으로 남부지역 벼 재배농가들이 애를 태웠다.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었지만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쌀값은 역대 최저가를 기록하고 있다. 유 대표는 “쌀값도 문제이지만 현장에서는 쌀 생산량도 정부발표보다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쭉정이가 많아서 도정수율이 지난해보다 10% 정도 낮게 나오고 있고, 수확할 때도 보면 확실히 작년보다 생산량이 적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8만평의 쌀농사를 짓는 유 대표는 후계농이자 쌀전업농이다. 아버지 농사의 대를 잇기 위해 후계농업인으로 지정받았다. 그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후계농업인을 신청했고 농업정책자금을 대출받아 농지를 구입해 본격적인 쌀 전업농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장으로 선출되다

아무래도 활동량이 많다보니 여기저기 강연도 많고 직책도 늘어나는 것이 인지상정. 유 대표도 지난해 10월에 창립한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의 시작은 농협중앙회 김병원 회장과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농사를 짓는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김병원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젊은 여성농업인들과 함께 지난 8월 처녀농군 초청 간담회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알게 된 여성농업인들이 농협중앙회의 지원을 받아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를 결성하게 된 것.

유 대표는 “김병원 회장님이 주최한 청년여성농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알게 된 여성농업인 10여명이 서산의 아로니아농장 견학을 하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풀고 인적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연합회를 결성했다”고 말했다.

여성농업인, 그것도 젊은 여성들이 모여 홍보와 판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모으고 상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결성된 모임이 청년여성농업인CEO연합회라는 설명이다. 청년여성농업인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판로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

여성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농사일이 힘들 뿐이지 여성으로서 힘든 점은 없다는 유 대표의 당당함이 바로 한국 농업을 이끌어가는 청년들의 모습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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