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품종들

한때 밥맛 좋고 수확량 많고 재배가 쉬워 농가들이 선호했던 벼 품종 ‘호품’이 퇴출의 수순을 밟고 있다. 다수확 품종이면서 미질이 좋아 농가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2011년 전국 쌀 재배면적 1위를 했던 호품 품종이었지만 올해부터는 공공비축미에서도 배제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쌀 수급 대책으로 공공비축미 매입 시 다수확품종 벼를 제외하기로 했고 지난 25일 공공비축 매입 대상 품종에서 다수확 품종 또는 시장 비선호 품종인 황금누리와 호품을 올해부터 제외한다고 밝혔다.

황금누리는 대표적인 다수확품종이라 농가들의 선호도가 높은 품종이다. 황금누리 등 다수확품종의 재배면적 비율은 2012년 17.9%에서 2015년 30.1%로 12.2%p 증가된 반면 공공비축 매입비중은 2012년 35.3%에서 2015년 55.7%로 재배면적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 같은 현상은 공공비축미 매입을 품종에 관계없이 같은 가격으로 매입하고 있어 농업인들이 다수확 벼 품종재배를 선호한 결과로 풀이된다.

밥맛과 생산량을 잡은 호품

쌀 증산이 절대적인 시절이 있었다. 바로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다. 농촌진흥청에서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는 것은 지상과제였고 결국 ‘통일벼’가 개발됐다. 그러나 다수확품종의 최대단점이 맛을 극복하지 못한 통일벼는 소비자에게 외면받았고 도열병 등에 취약해 서서히 도태됐다.

그리고 개발된 호품 품종은 맛과 생산량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벼 품종이 됐다. 2009년 농식품부가 최고품질 품종으로 지정한 쌀 8종 중의 하나였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호품은 종자보급 3년차였던 2010년 국내 최고 인기품종 '추청'을 제치고 재배면적 전국 1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면서 전남북, 충남지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한 품종이 됐다.

2008년 1만여ha에 불과했던 재배면적이 3년만에 15만ha를 넘어서면서 무려 15배나 호품을 키우는 논이 증가한 것이다.

호품을 개발한 김보경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식량작물과장은 “2006년 육종해서 보급한 품종으로 농가입장에서는 재배안정성이 뛰어나고 수확량이 많으니 인기가 좋았고 밥맛도 좋아서 재배량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김보경 과장은 “농가에서는 수확량이 소득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다수확품종을 선호하기 때문에 호품품종을 재배했다”고 덧붙였다.

영광이 컸던 만큼 상처도 많았던 품종

2010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된 호품은 풍년이라는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2008년, 2009년 연이은 대풍으로 쌀 생산량이 대폭 늘면서 쌀값이 하락하자 다수확품종 재배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

여기에 재배안정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단점으로 변질됐다. 농가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적정 시비량보다 훨씬 많이 비료를 주면서 생산량은 많아졌다. 그러나 문제는 밥맛이었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비료를 많이 줄수록 미질은 나빠졌다.

맛이 좋다는 장점을 잃어버리자 농가들의 원성이 높아졌고 2011년 종자발아 문제가 발생하면서 농가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김보경 과장은 “당시에 농가들에게 적절한 재배법을 교육하러 다니고 비료를 적정량을 사용하라고 강조했지만 농가들의 과다한 비료 사용을 막을 수 없었다”며 “여기에 풍년이 드니까 정책적으로 다수확품종을 도태시키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결국 호품 품종은 정부 보급종에서도 제외됐고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공공비축미 수매에서도 퇴출이 결정되면서 한동안 우리는 호품 품종의 쌀을 구경하기 힘들 게 됐다.

쌀, 맛으로 평가하는 시대

최근 대형마트 쌀 판매대에 가면 생산지역별로 전시하던 이전과는 달리 품종별로도 구별해서 전시해 판매를 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밥맛을 중요시 여기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고 시장에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 1인당 쌀소비도 현격히 줄면서 양보다는 맛과 질에 의미를 두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밥맛에 치중해 고시히까리라는 국민 품종을 만들어냈고 한국에서도 재배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경기미, 이천쌀, 여주쌀, 김포쌀이 제일 맛있다고 소비자에게 알려져 있지만 품종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천쌀, 여주쌀, 김포쌀 모두 추청이라는 품종이고 일본의 아키바레 품종이 개량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신동진이라는 품종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밥맛이 좋은데다가 경기지역이나 철원 오대쌀보다는 가격도 낮기 때문이다.

밥맛을 중요시 여기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밥맛이 좋은 벼 재배도 늘어난다. 김보경 과장은 “이제는 소비자 선택 요건이 가격이 아닌 맛이기 때문에 농가들도 이에 맞춰야 한다”며 “농가도 수확량보다는 고품질의 벼를 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식량과학원에서는 재배, 미질 등을 고려해 최고 품질의 쌀을 선정한다. 충남에서는 ‘삼광’, 충북 ‘진수미’, 전북 ‘신동진’, 전남 ‘호평’ 등이 최고 품질의 쌀로 평가받고 있다.

김 과장은 “이제 맛으로 쌀을 선택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은 호품 품종이 뒤안길로 물러났지만 맛과 재배안정성으로 인해 언젠가는 다시 재배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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