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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인하 경북귀농귀촌학교장]“귀농은 혁신이다.”농업혁신 주체로 거듭나는 귀농인돼야

“귀농인은 지역에서 농업혁신을 이끌 주체가 돼야 한다.” 오인하 경북귀농귀촌학교장은 귀농인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50~60대가 앞으로 농촌 성장의 주역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 중 귀농한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에서 태어나 도시로 나가서 일했던, 산업화의 주역들이다. 이들이 귀농을 통해 또다시 국가성장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귀농인들이 농촌개혁의 주도세력으로 자리잡는 것은 말만큼 녹록치 않다. 실제로 지역민들 중에는 귀농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느날 갑자기 시골로 이사 와서는 자기 기준을 고집하며 이것저것 지적하는 통에 동네 인심을 사납게 만든다는 것이 골자다.

하나의 나쁜 사례가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지면서 귀농인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덧씌워지기도 한다. 오 회장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동의했다. 다만 개혁의 주체로 서기까지의 방법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 회장이 강조하는 귀농인의 자세는 ‘숨은 일꾼론’이다. 앞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뒤에서 묵묵하게 봉사하면서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모두가 인정하는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귀농인 스스로 자기희생을 해야만 결국 농촌개혁과 소득증대라는 성과를 앞당기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는 보스(boss)가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자연스럽게 권위를 인정받는 리더(leader)가 되어야 진정한 리더십(leadership)을 발휘할 수 있다는 리더십 원론과도 일치된다.

그는 “귀농인들이 ‘왕년에~’를 들먹이는 등 잘난 척 해서는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배척받는 일밖에 안남는다”며 “농업에 대해서는 신출내기일 뿐이니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력 없이는 행운도 없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법대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안 회장이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친구의 거듭된 권유 때문이었다.

우선 귀농을 위해 경매로 집을 샀다. 싸다는 이유로 덜컥 샀는데 오리를 사육하던 이 집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3개월간 대구에서 새로 산 집으로 출퇴근하면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닭과 오리의 배설물에 질소분이 많으니 거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오 회장은 대구에서 살았는데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채소를 기르는 하우스가 많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이들 중 농사를 잘 짓는다고 소문난 이가 있어서 농사를 가르쳐달라고 매달렸다. 그렇게 상추를 심었다.

“귀농 첫 해 상추를 심어서 8월에 출하를 했는데 속칭 ‘대박’이 났어요. 삼겹살에 상추를 싸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이 소 뒷걸음에 쥐 잡았다고, 농사 한 번도 안지어본 사람인데 운수대통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성취의 이면에는 절실한 마음으로 노력한 그의 땀이 있었다. 상추를 잘 키우는 방법과 유통, 출하시기, 재배 등 열심히 공부했다. 같은 채소도 출하시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감안해 파종 시기를 택했고, 배추 성장의 최적온도인 25도를 맞추기 위해 밤새도록 물을 뿌리기도 했다.

그의 노력은 시금치를 키우면서도 계속됐다. 자신이 키운 시금치에서 단맛이 돌지 않는 것을 느낀 그는 포항초를 키우는 구룡포에 가서 직접 시금치 키우는 방법을 체험했다. 딱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다른 점이 있다면 염분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느낌만 있었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울진에 있는 국제 유기농협회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물었다.

“구룡포 간 김에 바닷물이나 2통 떠서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바닷물을 싣고 집에 도착하니 물과 70:1 비율로 바닷물을 희석해 출하 15일 전에 옆면살포하라고 가르쳐주시더군요. 그대로 했지요. 15일 후에 출하하는 데 거짓말처럼 시금치에서 단맛이 도는 겁니다. 역시 농사는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시금치 품질은 좋아졌지만 이번에는 판로가 문제였다. 애써 지은 시금치를 버릴 수는 없었다. 대구 도로가에 좌판을 폈다. 입간판을 만들어서 시금치의 효능을 설명하고, 시금치를 생으로 먹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판매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에 5천원을 받았는데 맛보신 분들이 여러 봉지씩 사는 통에 불티나게 팔렸지요.”

결국 그는 자신이 기른 시금치를 도로에서 모두 팔았다. “귀농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든 농사에는 초보자다. 초보자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개선하고 혁신해야 한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내가 생산해낸 상품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지역 공동체의 문화를 인정하고 사람들과 동화될 수 있도록 처신해야 한다. 이것이 귀농인들이 지녀야할 자세다.”

오 회장은 특히 기존 농부들의 노하우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네마다 밭고랑이 다릅니다. 비가 올 때,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등을 다 고려한 결과지요. 아무렇게나 만든 것이 아니라 지역적 특색을 고려한 과학적 사고가 담겨있다는 말입니다. 귀농인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처럼 옛 것을 배워서 더 좋은 것으로 만들겠다는 혁신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정치색 배제, 연합회 순수성 유지해야

전국의 귀농인구는 2014년 기준으로 8만명으로 집계된다. 보통 귀농가구를 4만가구로 봤을 때 가족이 모두 이사하는 귀농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약 10만명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지난해 설립된 귀농귀촌연합회 회원들은 모두 귀농인이다. 사는 지역도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조직화 할 수 있었을까?

오 교장은 “면과 군 등에서 자생한 조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합회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면이나 군단위부터 자생한 귀농인들이 자연스럽게 시와 도단위 조직에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전국조직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조직이 만들고 인위적으로 회원을 모집한 것이 아니라 태생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연합회 창립의 목적 역시 정치색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하게 귀농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게 오 회장의 주장이다.

혹자는 귀농귀촌연합회가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미 관련 단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오 회장은 현실적 제약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농연은 연령제한(50세)이 있다. 하지만 실제 귀농하는 분들의 80% 이상은 50대 이상이다. 때문에 귀농인의 대다수가 한농연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50대 이상의 귀농인들은 홀로서야만 하는 걸까요? 함께 도우면서 성장하는 길을 찾고 싶었어요. 전농의 경우 정치색이 있어서 함께 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오 회장은 연합회가 정치색을 띄거나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 영리, 이권이 개입되면 단체는 자기도 모르는 순간 타락하게 된다. 민간단체의 운동은 순수해야 한다. 절대로 정치세력화 돼서는 안된다. 순수하지 못하면 조직 내 파당이 생기고 갈라지게 된다. 후배(손)들에게 아름다운 단체로 남아야 한다.”

농업의 미래 밝아

오 교장은 3년간의 준비로 올해 경북귀농학교를 만들었다.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교육으로 1기수 30명을 배출했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민간위탁교육을 진행해보니 대단히 보람이 컷다는 전언이다. 사실 처음 그가 귀농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는 역귀농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교육을 준비하면서 내 농사도 중요하지만 귀농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진정한 멘토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실제로 역귀농의 피해는 대단히 크다. 귀농으로 인생 2막을 열고자 했는데 오히려 신불자가 돼 도시로 쫒겨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사회 안전망 밖으로 내쳐지게 된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귀농인구의 20% 내외가 정착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귀농은 어렵습니다. 준비 잘하고 단단히 결심해야 안착할 수 있습니다. 선배 귀농인들의 노하우를 공유해 안착을 유도하고 싶습니다.”

요즘 오 교장의 마지막 목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농업을 모티브로 한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어른들의 귀농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것이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그는 “농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일한 일”이라며 “산업구조 변화와 기술의 발전 추세를 감안할 때 농업은 충분히 도전할만한 창업 아이템”이라고 강조했다.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법대나 의대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생명산업이 고부가가치를 낼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 농업의 중요성을 어린시절부터 인식시켜 젊은 세대가 취업이나 고시에 매달리는 대신 농업에 뛰어들어 승부를 보게 하고 싶다.”

오 교장은 단순히 귀농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혁신을 지향하는 큰 틀 안에서 활동하는 연합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전국귀농귀촌연합회의 쉼없는 노력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장욱진  wjjang@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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