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기간 평균 10년 이상, 비용은 약 2조~3조원 달해
AI 기술 신약 개발 도입 시 기간·비용 획기적으로 줄일수 있어
AI 신약 개발 초기 단계...전 세계적 오픈이노베이션·인수 전략

[포인트데일리 이호빈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은 IT 산업뿐 아니라, 제조업, 금융업, 서비스업 등 전 산업군에 접목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 역시 AI 기술을 활용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선 2018년 알파고 모먼트를 기점으로 AI 신약 개발 산업이 태동해 AI 기술을 기반한 신약 개발이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2019년 'Insilico Medicine'의 46일 만의 폐섬유증 치료를 위한 후보물질을 찾은 것이 대표적 사례로 알려졌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AI 신약 개발이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픽사베이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AI 신약 개발이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픽사베이

제약·바이오 업체는 왜 AI 신약 개발에 주목하는가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신약 개발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AI 기술이 신약 개발에 드는 막대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은 크게 주어진 질병에 대한 타깃 물질 발굴과 검증, 히트 및 선도물질 발굴, 도출된 화합물에 대한 합성 가능성과 효능 등에 대한 평가를 거쳐 최적의 신약후보 물질을 발굴하고 마지막으로 전임상과 임상 과정의 단계를 거친다. 이때 AI 기술은 모든 단계에서 적용될 수 있고 단계마다 특화돼 적용될 수 있다.

우선 신약 개발은 후보 물질을 도출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제약사들은 신약을 개발할 대상 질환을 정하고, 수백 개의 관련 논문을 살펴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후보 물질을 탐색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이 과정을 통해 소요되는 신약 개발 기간은 평균 10년 이상, 비용은 약 2조~3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도 실패 확률이 92%에 달한다.

만약 이 과정에 AI가 개입된다면 한 번에 100만건 이상의 논문을 탐색할 수 있어 수십 명의 연구자가 1~5년간 해야 할 일을 하루 만에 진행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신약 개발 전 단계에 활용될 경우 개발 주기가 15년에서 7년으로 단축되고, 개발 비용도 약 6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AI 기술은 임상시험 단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합물 구조 정보와 생체 내 단백질 결합능력을 계산해 신약후보 물질을 제시한다. 또 약물 상호작용 등을 예측해 임상시험 설계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행착오도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 밖에도 AI 기술은 의약품 제조 단계, 인허가 의사결정, 약물감시 등에도 사용된다.

이처럼 신약 개발 과정에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단축 해주는 AI 기술의 특장점에 힘입어 국내외 제약사들은 AI 신약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대형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사노피, BMS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특히 화이자는 Cytoreason, Roivant 등 주요 AI 기업의 인수 및 대규모 투자로 AI 신약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AI 기반 관련 신약 개발은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여, 2023년 기준 글로벌 240건의 파트너십, 60조원 이상의 투자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 상용화 된 백신 및 모델링에 AI가 주로 활용됐다"며 "백신 외에도 다양한 약물의 디자인으로 범위를 넓혀 임상 2상 및 3상에 돌입한 약물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ASTI 마켓 인사이트 135: AI 신약 개발'을 통해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21년에는 6억980만 달러 규모로 예상되며, 매년 45.7% 성장해 오는 2027년 40억35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현황. 자료=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협의회
AI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현황. 자료=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협의회

◇ AI 신약 개발 기업 파이프라인 105건...이 중 입상 도입 4건

국내에서도 AI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및 투자 유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 신약개발지원센터 자체조사 결과 29개 AI 신약 개발 기업의 투자 유치 현황은 6000억원 이상으로 확인됐다. 또 11개 AI 신약 개발 기업의 신약 파이프라인은 105건이며, 이 중에는 임상 도입 4건이 포함됐다. AI 신약 벤처기업인 온코크로스의 근감소증 치료제 'OC514'가 글로벌 임상 1상에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제약사 역시 AI 신약 개발 연구에 활발하다. 

삼진제약은 마곡 연구센터 내 AI 신약개발팀를 신설하고 200개 타깃 후보 발굴 및 14개 과제를 확보하며 캐나다 사이클리카, 한국 심플렉스 등 다양한 AI 기업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GC녹십자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인공지능 신약 개발을 연구소로 전환해 희귀질환 및 백신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AI신약팀을 자체 구성해 공동연구에 활용하고 별도 사내교육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아카데미를 운영해 AI 신약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대웅제약은 합성치사 원리에 기반한 항암 타깃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합성치사란 1개 유전자 이상으로는 세포 사멸을 일으키지 않지만, 2개 이상의 유전자가 변이, 억제, 발현돼 그 복합적 결과로 세포 사멸이 유도되는 현상으로, 종양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세포에만 세포 사멸을 일으키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이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미국 AI 신약 개발 기업인 크리스탈파이, 국내 기업인 온코크로스, 이조스바이오 등과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대웅제약은 이들과 신약 개발 파트너십을 맺고 AI 기반 신약 개발을 공동 진행한다.

이뿐만 아니라 대웅그룹 계열사인 대웅테라퓨틱스 또한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스핀오프 기업 넷타겟과 합성치사 등 신약 공동연구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협약을 체결했다.

HK이노엔은 최근 AI 기반 신약 개발 바이오텍 기업 '에이인비'와 AI 기술을 활용한 신약 공동개발 관련 MOU를 체결했다.

HK이노엔은 에이인비가 보유한 AI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을 활용해 세포유전자치료제 개발에 적용할 새로운 항체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항원 디자인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공동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보령은 온코크로스와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의 적응증 확대를 위한 공동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보령은 온코크로스의 AI 플랫폼인 '랩터(RAPTOR) AI'를 활용해 카나브의 신규 적응증을 발굴할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 역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은 AI 신약 개발 갤럭스와 협업해 AI 기반 항체 신약 설계 플랫폼 구축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LG AI 연구원의 New Drug Discovery팀은 자체 모델 '엑사원'을 활용해 항암백신의 신항원발굴에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 AI 신약 개발산업 아직 걸음마 단계... 공격적 투자 전략 어려워

국내에서 AI를 통한 신약 상용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신약후보 물질의 유효성 탐색 과정에서는 AI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상황이다. 

AI를 활용한다고 해서 신약 개발 과정의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이전보다는 신약 개발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준다는 평가가 대다수 의견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전문가 영입, 생산 시설 설립 등의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피하고자 오픈 이노베이션 형태로 AI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AI 신약 개발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로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상황"이라며 "AI 신약 개발 스타트업이 전문성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오픈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공개하는 형태의 협업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대체로 오픈이노베이션이나 투자를 통한 인수 등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AI 신약 개발이 자체개발보다 오픈이노베이션 형태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 관계자는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제약사에서는 AI기업에 자사의 데이터가 넘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밀접한 협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약사가 AI 기업의 기술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주도적인 연구개발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자체개발은 자신이 원하는 문제에 맞는 기술 개발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장점도 존재한다"라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화이자는 mRNA 백신 개발에 AI 기술을 도입한 이후로, 오픈이노베이션 및 공동연구를 통해 AI 도입을 적극 진행하는 동시에, 디지털 혁신센터를 건립하고 420명의 자체 인력을 통해 AI 신약 개발을 포함한 200개 이상의 첨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이는 AI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기에 가능한 적극적인 투자 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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