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속세 부담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티도 안나..."시대착오적"
정부, 국회에서 상속세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일부 야당의원들도 "개편하자"
상속세 개편을 부자 감세로 보는 시각 여전해...과감한 개편 추진은 '첩첩산중'
상속세 개편의 첫 걸음은 '유산세'의 '유산취득세' 개편...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포인트데일리 김국헌 기자] 한국에서 23년째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상속세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고(故) 김정주 창업자 유족이 막대한 상속세를 현금으로 못 내고 지분으로 납부하면서 기획재정부가 2대 주주에 올랐고, 기획재정부가 넥슨 지분 4조7000억원 어치를 매도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가능성은 낮지만 이를 중국 업체가 일거에 매수한다면 넥슨은 중국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게임사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상속세율, 개편할 필요가 있는지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삼성, LG 회장 일가는 빚을 내서 상속세를 내고 있고, 한샘과 락앤락, 쓰리세븐 등은 외국 사포펀드에 회사를 넘겼다. 현대차그룹 역시 정몽구 회장의 재산을 정의선 회장으로 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할 상속세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에서 창업가 정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이에 현재 상속세 개편을 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포인트데일리는 상속세 이슈들과 개편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상속세, 이대로 둘 건가'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상속세, 이대로 둘 건가①] 상속 2~3번 하면 기업 국유화...이게 맞나?
[상속세, 이대로 둘 건가②] 넥슨, 2대 주주가 중국이 된다면
[상속세, 이대로 둘 건가③] 현대차, 상속세 낼 2조원이면 울산 전기차 공장 하나 더 세운다
[상속세, 이대로 둘 건가④] 기업들 다 바라는데...정부, 개편 의지는 있나?


정부가 파괴적인 상속세 부담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가업상속공제제도 등을 확대추진 중이다. 

우선 지난해 세법개정을 통해 공제적용 대상의 매출액 기준을 4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높였다. 공제한도도 500억 원에서 600억 원으로 늘렸으며, 납부유예 제도도 새로 도입해 지원을 확대했다. 

올해도 기업주가 자녀에게 가업을 물려줄 경우 증여세 최저세율인 10%를 적용하는 과세구간을 현행 60억 원 이하에서 120억 원 이하로 늘리는 세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 정도 보완으로는 티도 안난다는 게 대다수의 시각이다. 상속재산이 1억원 이하면 10%, 1~5억원이면 20%, 5~10억원이면 30%, 10~30억원이면 40%, 30억원을 초과하면 50%를 내야하는 상속세율이 그대로 유지 중이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가 자신의 지분을 상속할 경우 할증세율이 추가로 붙는 것도 그대로다. 중소기업 매출도 5000억원을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30억원 초과하면 상속세율이 50%다. 1999년 정해진 법이 모든 물가가 올랐는데 23년간 유지되다보니 모든 창업주들은 '상속세 폭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상속세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겪고 있는 문제다. 20년 전 대비 노동자 임금은 2배도 오르지 않았는데 서울 아파트 값은 4배 이상 치솟았다. '똘똘한 한채'를 부모가 마련해 세상을 뜰 때가 되어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면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어 파는 경우가 대폭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구멍들도 있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해야만 공제 자격이 생기는데 기업주가 예기치 못하게 급작스레 사망할 경우에는 이런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그나마 매출액 5000억원 미만 기업은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으면 후계자의 업종 변경이 제한된다. 현행 상속세 제도가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들이다. 


정부·국회에서 상속세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일부 야당의원들도 "개편하자"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상속세가 정부·국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10일 "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밝히면서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추 부총리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제일 높은 국가이고, 38개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며 "여러 뜻이 맞는 의원님들이 이 개편안을 본격적으로 한 번 내주시면 정부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면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개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상속세 완화는 '부자 감세'라며 부정적이던 야당 내부에서도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지속 가능한 상속·증여 및 부동산 과세 개선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 "상속세 최대 주주 할증 제도 폐지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고양되고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면 대한민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며 "최대주주 20% 할증은 징벌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고인의 유산 전체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닌 개개인이 상속받은 재산만큼만 세금을 내기 유산세를 내는 유산 취득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황희 의원도 "중소기업은 높은 상속세 부담으로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폐업을 선택하기도 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25% 정도로 (상속세를) 낮추면 오히려 상속세 세수 확보가 더 많이 될 수도 있고 또 일부는 폐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세 개편을 부자 감세로 보는 시각 여전해...과감한 개편 추진은 '첩첩산중'


하지만 상속세 개편을 '부자 감세로 보는 기존 시각들이 여전해 과감한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기란 첩첩 산중이다. 

경실련은 '자산가만을 위한 상속세 폐지는 용납할 수 없다'는 논평을 냈다. 경실련에 따르면 상속세는 부의 재분배와 평등원칙 실현을 위해 1950년에 도입됐다. 법제정 이후 반세기 넘게 지났지만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은 더 악화됐다. 통계청의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10%와 하위 10%간 소득 격차는 21배, 자산 격차는 13배로 집계됐다. 특히 부동산 자산 격차는 더 심각하다. 같은 해 상위 10%와 하위 10%간 주택 자산 격차는 직전년도 대비 감소했음에도 여전히 40배를 초과한다.

경실련은 "양극화 문제가 악화일로인데 부의 재분배 기능을 오히려 약화시키자는 주장은 개탄스럽다"며 "최대주주 할증평가 과세 폐지는 사실상 대기업 재벌만을 위한 특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상속세 개편에 대한 목소리는 높이는 것과 달리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최근 정부의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상속세 개편 움직임에 대해 "선거용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경우 윤석열 경제팀 1기라 할 수 있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상속세를 개편해보자고 제안했지만 2기 경제팀을 이끌 최상목 부총리 후보자는 첫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와 관련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국제기준이나 이런 것과 관련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윤석열 정부 경제팀 1기는 상속세 개편에 대한 의지가 있었으나 새로 출범될 경제팀 2기는 눈치를 보고 있고, 야당 일각에서 상속세 개편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나 이를 반대하는 여론도 여전하다는 상황으로 요약가능하다. 


상속세 개편의 첫 걸음은 '유산세'->'유산취득세' 개편..."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앞으로 상속세 개편의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은 기재부가 추진 중인 유산세의 유산취득세로 변경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 과세 방식은 '유산세'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구분된다. 유산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전체 유산 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하고, 각 상속인이 연대 납세의무를 통해 세금을 내는 방식이다. 세무 집행이 쉽고, 과세 대상액이 큰 만큼 누진세율이 잘 적용돼 세수 확보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으면 최고세율인 50%를 부과한다.

반면 유산취득세를 따를 경우 각 상속인의 취득재산 가액에 대해 개별적으로 과세하게 된다. 과세표준이 쪼개져 비교적 세수확보 능력은 떨어지지만, 상속인 개인이 받는 부분에 대해서만 과세하게 돼 공평과세 이념에 적합하다. 상속인 간 재산 분할을 촉진해 부의 집중 억제 효과도 있다. 키를 쥔 기재부는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데 검토에 시간과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유산취득세의 장점과 국제적 추세를 감안해 지난해 10월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을 위한 연구 용역에 착수했고, 올해 2월엔 이를 위한 조세개혁추진단을 설립했다.

야권 일각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오면서 올해 7월 세법개정안에 포함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결국 이같은 목표는 무산됐다. 기재부는 유산취득세 쟁점에 대한 추가 분석을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기재부가 이달 안에 연구를 마치는 대로 내년에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되지만 또다시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높다. 세수 감소 및 부자감세 논란과 상속 재산의 위장 분할 등 부작용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상속세 완화를 '부자 감세'로 보는 여론이 제도 개편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상속세 개편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상속세 개편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 '부자 감세'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2~3번 상속하면 나라 것이 되는 현재 한국의 상속세로는 미래를 이끌어갈 기업을 육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재부가 넥슨의 지분을 매각하게 된 것은 삼성, SK 등의 대기업이 실적 저하로 법인세가 급감했기 때문"이라며 "상속세를 개편하게 되면 당장 세수가 줄어들 우려가 있어서 어떤 정부도 쉽사리 바꾸는 것을 추진하기 어렵다.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걸기"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문제를 부자 감세라는 진영논리고 볼 필요는 없다"며 "과거에 우리가 잘못생각해 왔던 부분이 있었다면 기업가 정신도 고양시켜 나가고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포인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